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움직였다. 피곤하다.
성당 미사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어제 계획에 적어놨으니.. 작심하루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밖에 나갔다.
진짜 추워 너무 추워.. 자전거 끌고 나갔는데, 눈까지 왔네? 평지에서는 타고, 내리막길에서는 끌고 여차저차해서 20분 걸려 성당 도착.
가까운데 놔두고 멀리 다니는 것도 좀 거시기 하지만서도, 운동 겸사겸사.
미사를 듣는데, 강론시간에 권위와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강론은 딴생각하면서 듣는 게 제맛! ㅋㅋㅋ..... 아냐..... 담부턴 진짜 집중해야지.
어쨌디, 나는 딴생각을 했다. 죄송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어르신. 내 나이대는 나 하나밖에 없어! 성당이 그렇게 꽉 찼는데.
맞다 맞다, 본문으로.
어르신과 권위에 대해 생각하며, 떠올린 것이 어버이연합이다. 어버이 연합? 권위? 그분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순수한 신념으로 움직이겠지.
권위란 어디서 나왔을까? 다른 사람이 듣기에 납득 가능한 말을 하는 그런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납득? 그건 정당한 말에서 나올 것이고, 거기서 더 나가서 정당한 말이란 정의와 연결될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의 아닐까. 정의로운 말, 정당한 말, 권위있는 말. 권위의 근본은 정의로운 행동과 말 아닐런지.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정의를 찾는다. 여론조사에서도 나왔고, 아직까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일까가 잘 나가는거 보면, 확실한 사실이다.
1. 논의의 기초
기본적으로 정의란 사회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사회가 존재하지 않으면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혼자뿐인 삶에서 어떻게 정의를 논하겠는가. 이에 대해 로빈슨 크루소를 들 수 있지만, 그는 현재 혼자 있는 상황일 뿐, 애초부터 홀로 존재한 사람이 아니다. 사회안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정의란 기본적으로 사회정의를 의미한다. 사회 정의가 개인차원에 적용된 것을 일컬어 개인적 정의라 칭한다. 이를 기초로 하고, 정의의 정의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2. 정의의 정의
1) 사회 안에서의 정의
마이클 샌댈은 자신의 책에서 정의에 대해 명확히 정의내리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공리주의 등을 언급하며 그 허점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 길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정의를 물어본다면, 가지각색의 대답이 나올 것이다. 백 명의 사람이 존재한다면, 백 개의 정의에 대한 정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일까. 사실상 정의롭다는 말은 타인에게서 내려지는 평가다. 자신이 자신의 행동을 보고 정의롭다는 평가는 내리지 않는다. 사회 안에서 내려지는 평가, 그것이 정의이다. 따라서 정의롭다는 행동은 어떨 때는 정의롭지 않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로써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정의는 사회 안에서 정의된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정의로운 행동은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 행동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정의로운 행동은 평가하는 개인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가 생겨난다. 한 행동이 모두에게 이롭지는 않다. 하나의 행동은 이득과 손해를 동시에 만든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행동이라도 개인 한 사람의 평가에 따르면 정의롭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행동의 평가는 사회 안에서 정의된다. 그렇다면 사회 안에서 평가하고, 정의하는 것은 사회 전체인가 아니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개인인가. 만약 사회 전체가 정의를 평가한다면 사회 전체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 모두가 만족할만한 정의로운 행동이 가능한가. 수많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2) 결론
도저히 중간 논리를 못쓰겠다 ㅠㅠ
나만의 결론은 이것이다. 정의로운 행동이란 자신 스스로가 만족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만족하는 행동을 뜻한다. 공동체주의에서 정의란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행동이다.(맞나?)
하지만, 공동체의 강조는 개인의 희생을 불러온다.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희생하는 것, 그것이 정의로운 행동의 기반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공동체의 행동은 결코 정의로운 행동이 될 수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했던가. 나도 역시 동양사람인가보다.
개인이 만족하고, 가족이 만족하고, 나라가 만족하고, 나아가 모두가 만족하는 행동이라면 정의가 될 수 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위한다는 속성이 들어있다.
칸트처럼 지나치게 이성만 강조하다 보면, 감정을 간과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정의는 자신이 만족한다는 측면에서 감정을, 동물의 보편적 속성을 만족한다는 측면에서 본성을, 사회 전체의 평가가 이루어 진다는 측면에서 이성을 충족할 수 있는 개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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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걸 두서없이 적었다. 역시 글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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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생활 하면서, 내가 진짜 베스트로 싫어하는 캐릭터가 페이트 제로 에미야 키리츠구인데. 이놈은 자신이 희생할 생각은 안하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생각만 하면서 자기합리화는 뭐 그리 많이 하는지.
과거가 밝혀지고 사실은 착한놈! 이라 보기에도... 이 놈은 용납이 안되는 지경이라. 사이코패스지.
자기빼고 나머지는 다 희생시켜.
그래서 소설 볼때도 이놈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행복하게 만드는건 일단 제끼는 편. 진짜 싫고, 비호감.
ㅋㅋㅋ 사실 페이트 제로 보면서 맘에 드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더라.
안본 눈 삽니다... 내 눈 썩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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